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임성 사건 (문단 편집) === 열강의 반응 === 임성 사건 발발 직후, 중국의 외국인들은 이를 [[의화단 사건]] 이후 최대 배외 사건으로 규정하여 정부에 교민들의 안전과 보호를 강력히 주문했다. 상하이, 베이징, 한커우 등지의 미국 상회 및 교민협회에 미국 국무부에 "중국의 모든 수륙 교통기관에 외국 군대를 주둔시켜 감독하며, 외국 경찰대를 전국의 주요 지방에 주둔시켜야 한다."라는 요구를 전달했고 5월 10일 베이징과 톈진의 영미협회도 긴급합동회의를 계최, 외국인 보호를 위해 진포철로에 외국군을 주둔시켜 달라는 결의안을 내놓았다. 6월 1일 상하이 거주 외국거류민 5천명도 대회를 개최, 외국인의 안전 보장을 위한 조치를 취하도록 북양정부에 요구했다. 주 스위스 영국 공사는 영국 교민의 피해상황을 국제연맹 비서처에 보고하고 교민들에 대한 안전보장과 피해배상을 중국에 요구했다. 멕시코 역시 자국 교민의 피해 상황을 국제연맹에 통지하고 협조를 요청했으며 이탈리아 왕국도 국제연맹회의를 개최해 중국의 철도를 감독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미국 언론 역시 중국 정부를 맹비난했다. 가장 반응이 강력했던 곳은 영국이었는데 이는 진포철로가 영국이 많은 돈을 투자한 영국의 세력권 안에 있는 철로였기 때문이었다. 5월 16일 공사단회의에서 영국은 당고에서 연합해군시위를 벌여 중국 정부에 무력으로 압박을 넣자고 주장했는데 미국 공사 셔먼이 열강의 무력간섭은 외국인 인질의 살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반대하며 북양정부로 하여금 외국인 인질을 구출하게 하자고 주장하면서 무산되었다. 영국 내부에서는 강경조치를 취해 영국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6월 19일과 6월 30일, 영국 정부는 미국 국무부에 서한을 보내 중국에 강경대응을 하여 외국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유사사건의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 공사 조던은 다음과 같이 입장을 표했다. >"중국의 무질서 상태는 정부가 무능력한 소치이다. 따라서 단순히 몸값을 치루어 인질을 구해내는 방법은 장래 이와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간접적으로 장려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 중국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제연맹 혹은 기타 기관을 통해 외국인 장교가 지휘하는 경비재를 조직하여 철도를 관리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에는 토비들이 일본제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고 인질 중에 일본인이 없다는 이유로 사건의 배후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었는데 일본은 다음과 같은 담화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 >"열강이 [[워싱턴 회의]]에서 일본의 철병을 강요하였는데, 만일 일본군이 여전히 산동에서 질서를 유지했더라면 임성 사건은 근본적으로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은 이 사건의 배후들이 자신들이라는 소문에 적잖게 당황했는데 1923년 5월 10일 일본군 참모본부에서 작성한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금번 토비사건에 대해 일부 사람들이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이번 납치사건에 외국인질 가운데 일본인 피해자가 한사람도 없어 일본이 이번 사건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오해하고, 심지어 토비 가운데 일본인이 포함되어 있다는 무고도 있는 모양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